Back to list

Y Combinator 없이 미국 진출하기

Runbear 팀이 미국 법인 설립부터 고객 확보까지 지난 1년 간 경험한 삽질과 배운점을 정리한다.

올해 초 Runbear 팀이 피봇 후 출시한 Runbear 제품이 미국 시장을 대상으로 $4k MRR을 달성했다. 아직 너무 초기 제품이고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최근 한 달 동안 두 배 이상 빠르게 성장했기에 뿌듯한 마음으로 그간의 경험을 공유해보려 한다.

TL;DR

  • 미국을 거쳐 세계로 갈 생각이라면 법인 설립부터 미국에 해보자.
  • 미국에는 YC 말고도 Techstars, A16z 처럼 훌륭한 Accelerator가 많다.
  • 나만 없어 YC

시작하기 전에

Runbear

Runbear는 OpenAI Assistant나 Anthropic Claude 같은 Custom LLM App을 회사 내 커뮤니케이션 도구인 Slack, Microsoft Teams, HubSpot 등에 연동할 수 있게 도와주는 No-Code 제품이다. 올해 초 미국에 제품을 출시한 뒤 BCG, LaserAway를 포함해 50개에 가까운 고객사를 확보했고 빠르게 성장 중이다.

미국으로 가자

우리 Runbear 팀의 창업 목표는 전세계에 기여하는 B2B SaaS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글로벌의 꿈은 스타트업 업계에 처음 들어오면서부터 꿈꾸던 오랜 목표였다. 오랜 고민과 논의 끝에 한국에서 시작해서 글로벌로 진출하는 것 보다, 처음부터 미국에서 시작하는 것이 목표 달성 확률을 높이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 회사부터 미국에 세워보자.

우리가 미국에서 고객을 유치하려면 미국에 진출한 한국 회사가 아니라 실제 “미국 회사”가 되어야 했다. 법인을 미국에 세운다고 미국 회사가 되지는 않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법인을 세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Stripe Atlas를 활용해서 Delaware에 법인을 설립했다. 정해진 시간 내에 83(b)를 위해 IRS에 국제 우편을 보내는 등 귀찮은 일들이 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큰 무리 없이 설립할 수 있었다.

반년 간의 삽질

우리의 첫 제품은 기술 지원을 위한 AI 비서였다. 빠른 시간 안에 제품을 개발하고 출시했으며, 감사하게도 Pre-seed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 출시 전에 여러 인터뷰를 진행했기에 출시만 하면 고객이 몰려올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가 세웠던 원칙 - 빠르게 출시하고 고객으로부터 배운다 - 에 따라 자신감있게 제품을 출시했고, 그렇게 우리는 유료 고객 하나 없이 반 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Y Combinator에도 지원했고, 탈락의 쓴맛도 느껴봤다. 첫 시도에 인터뷰 단계까지 갈 수 있었지만 최종 인터뷰에서 탈락했다. 인터뷰까지 진행했다면 최종 3배수 정도 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명확하게 배웠다. 우리가 미국에서 고객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일단 가보자

한명이라도 유료 고객을 확보한 뒤 미국에 가려던 우리의 계획은 이런 저런 핑계로 계속 미뤄졌다. 링크드인에서 아웃바운드 세일즈도 해보고 콜드 메일도 열심히 보내봤지만 첫 고객을 확보하는 일은 너무나 어려웠다. 특히 1) 미국 거주 경험이 거의 없는 2) 세일즈 경험이 부족한 엔지니어 출신 창업자 둘이 3) 네트워크 없이 미국 고객을 만나는 일 자체가 너무나 힘들었다.

2023년 9월, 일단 한 달이라도 가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무작정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하고, 최대한 많은 고객 후보를 만나기 위해 일정을 구성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정의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를 부탁했다. 당시 ICP(Ideal Customer Profile)은 기술 지원팀이었기에 관련 사람들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TechCrunch, Zendesk 밋업, CX Summit 등 고객이 있을 법한 곳을 찾아 헤맸다.

무작정 갔다와서 배운점:

  • 무작정 가면 안된다.
  • (당시) 밋업에는 자신의 제품을 서로에게 판매하려는 스타트업 파운더들이 넘쳐난다.
  • 그럼에도 그곳에 가봐야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

피의 결혼식과 피봇

2023년 10월에 열린 OpenAI Dev Day는 피의 결혼식(Red Wedding, 왕좌의 게임 에피소드 제목)이라고 불렸다. OpenAI GPTs와 Assistant 발표로 여러 스타트업을 한 번의 발표로 죽여버렸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우리 Runbear 제품도 그 영향을 피할 수는 없었다.

고민 끝에 피봇을 결정했다. Runbear 제품 관련해서도 고객 관련 진척이 있었지만, 기술 지원 AI를 제공하기 위해 경쟁 상대가 다른 스타트업이 아니라 고객사의 기술 팀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 피봇의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래, 고객이 스스로 필요한 AI를 정말 쉽게 만드는 세상이 올거야. 우리는 그렇게 만든 AI를 더 잘 활용할 수 있게 도와줘보자.

우리의 제품 개발 과정을 돌아보니 AI 개발보다도 Slack, Zendesk 등 여러 기존 업무 도구 연동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이 부분을 대신해주는 서비스가 있는지 찾아봤지만 적절한 서비스를 찾지 못했었다.

그렇게 Runbear가 탄생했다. 일주일 만에 첫 제품 개발을 완료해서 출시했다. 완전한 제품은 아니었기에 두려움이 앞섰지만, 우리가 스스로 세운 원칙을 더 극한으로 지키려고 시도했다. 너무나 고맙게도, 드디어 시장의 반응이 있었다!

Techstars 합격 🎉

Techstars는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전세계 최고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중 하나다. 물론 그 중 최고는 대부분 Y Combinator를 뽑지만, Techstars와 YC를 비교하는 글과 영상이 상당히 많을 정도로 Techstars 역시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엑셀러레이터다.

Runbear Techstars

Runbear를 통해 YC 인터뷰 탈락 이후 가장 염원하던 “미국 고객”을 확보했지만 다음 YC 배치 지원 기간은 이미 끝난 뒤였다. 이전 인터뷰 탈락 이후 YC에게 받은 해결 과제 - 미국 고객 확보 - 를 달성한 상황이었기에 왠지 다음 배치에 지원하면 합격할 것 같다는 근거 미약한 자신감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막 시동을 거는 스타트업에게 6개월이라는 시간은 평생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실제로 창업 이후 보낸 시간과 거의 맞먹는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지원 없이 일단 미국으로 가자니, 우리가 미국 시장을 너무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우리가 고객에게 충분히 미국 회사로 인식되려면 미국 내 인지도가 있는 존재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때 마음 속에 떠오른 분이 지난 출장에서 한기용님의 소개로 만난 Jina 님이었다. Jina 님은 Capitola의 Custom Success VP이시고, Carta의 초기 멤버였으며, Techstars의 멘토로서 활동하고 계신다. 기술 지원 관련 조언을 구하기 위해 Jina 님을 만났고, Jina 님을 통해 Techstars를 알게 되었다.

Techstars와 YC를 비교하는 글들을 살펴보면 보통 YC는 좋은 비즈니스를 빠르게 성장시켜주고 Techstars는 초보 창업자를 훌륭한 창업자로 만들어준다고 한다. 우리 Runbear 팀의 기존 경험과 별개로 우리는 미국 시장에서 초보 창업자 보다도 미국의 비즈니스 문법을 모르는 초초보 창업자였기에 Techstars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Jina님의 도움을 받아 Techstars에 지원했고, 2개월 간의 지원 과정을 거쳐 마침내 Bay 지역에서 유일한 Techstars Oakland ’24 배치에 합격하게 되었다. (참고로 돌아오는 5월 22일에 다음 배치 지원이 마감되니 관심 있는 창업자 분들은 언제든 연락 바란다.)

이 글 반응이 좋으면 Techstars 지원 과정과 학습 내용도 자세히 소개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지금

Runbear 팀은 4명까지 커졌고, 현재 모든 팀원이 샌프란시스코에서 합숙하며 성장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익숙치 않은 시장에서 열심히 고객들을 만나며 비즈니스를 성장시키고 있다. Techstars 참여 이후 한 달 만에 두 배 이상의 성장을 만들었고, 고객의 사랑을 받으며 열심히 크고 있다. 제품도 꾸준히 발전해서 5월 7일 Product Hunt 런칭을 앞두고 있다.

일 년 간의 미국 진출 삽질 끝에 배운점을 정리해보자면:

  • 미국 시장, 특히 미국의 AI 시장은 한국보다 훨씬, 훨씬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서비스 제공자보다 고객이 먼저 나아가고 있을 정도다.
  • 한국 시장과 미국 시장은 정말, 생각한 것 보다도 더 다르다. 초기 스타트업이 한국에서 PMF를 찾은 뒤 미국에 진출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 미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미국의 비즈니스 문법을 따라야 한다. 대화, 고객 개발, 컴플라이언스, ICP, 투자 전략, 데이터룸 등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을 잊는(Unlearn) 노력도 필요하다.
  • 숨만 쉬어도 돈이 뭉텅이로 나간다.

마무리

Techstars의 철학은 “Give First”이다. 종종 “Pay it Forward”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직 갈 길이 너무 많이 남은 Runbear 팀이지만, 그간 우리의 경험이 조금이나마 스타트업 업계의 동료 창업자들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마지막 홍보 타임

Runbear Product Hunt

돌아오는 5월 7일, Product Hunt에 제품을 런칭할 예정이다.

**Product Hunt 예약 페이지**에서 런칭 알림을 설정할 수 있으니 많은 응원과 upvote 부탁드린다.